도올의 큐복음서와 도마복음에 대한 반박 (3) (김기천)
"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 News)에 공식 기고된 목사님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 매체사: 당당뉴스 (The DangDang News)
- 발행일: 2010-09-30
- 필자: 김기천 목사 (Rev. Kee Cheon Kim)
📜 목사님 원고 전문 (Manuscript)
도올의 큐복음서와 도마복음에 대한 반박 (3) (김기천)
업데이트 2010.09.30 00:06
나의 신화
일찍부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선교사를 도왔던 할아버지의 신앙이 아버지를 거쳐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한마디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선택의 여지없이 기독교 배경을 접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성서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자란 나에게 모든 생활의 기준은 곧 성서의 가르침이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별다른 의심이 없었기에 성서의 계시적인 내용이나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이때부터 성서 안에 있는 신의 이야기 즉 신화가 내 안에 신앙의 기반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신화는 나의 신앙의 기반일 뿐 아니라 삶의 기초가 되었다. 나의 정체성은 이 신화에 의해서 규정되기 시작했다. 천지창조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출생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필연이란 사실을 믿었다. 나의 인생의 시작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동정녀 탄생 이야기에서 마리아의 인생을 간섭하였던 성령에 대한 믿음이 2천년이란 시간의 거리를 넘어 나의 인생도 간섭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예수의 부활 이야기는 내 인생의 끝이 죽음이 아니란 사실을 확신시켜주었다. 바울이 부활한 예수를 만났던 것처럼 나 역시그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의 종말 선포 역시 나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종말 신앙에 입각해서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의 인생을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하였다고 믿는 하나님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과 연관된 나의 이야기 즉 나의 신화였다. 당시에 이 신화는 나의 삶의 시작이며 끝이며 전부였다.
신화 안에 종교 체험
나의 신화는 단순히 믿음의 내용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실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던 주간이었다. 목요일 저녁 집회를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교회 남기로 했다. 집회 기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울며 기도하거나 눈감고 찬송을 부르면서 마냥 행복해 하는 모습들은 마치 미친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일어났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까지 주로 부모의 강요에 따라 교회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직 자발적인 신앙행동은 나에게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집회에서 생겨난 호기심은 ‘나도 무언가 해보아야 한다’는 자발적인 마음을 자극시켰다. 그래서 그날 밤, ‘교회에 남아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 것이다.
저녁 집회가 끝났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서 기도를 했다. 예배당 앞쪽에는 불을 꺼졌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마루로 된 예배당이기 때문에 나는 방석 하나를 집어 들고 맨 앞으로 나갔다.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컴컴하기 때문에 남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기도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무언가 증거를 달라는 심정으로 난생 처음 간절히 기도를 했다.
얼마쯤 지났을 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내게 갑자기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이 마음속인지 어딘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물론 예배당 불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멀리서 보이더니 점점 더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눈물 콧물이 뒤범벅될 정도로 감격에 빠지면서 더욱 기도에 몰두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언어들이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방언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햇살이 나를 향해 축복하는 것 같았고 새들의 노래 소리 또한 나를 위해 불러주는 것 같았다. 순간순간이 아름다움과 감격 그 자체였다. 집으로 오면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 집으로 걸어오면서 또 다른 특이한 경험을 했다. 내 안에서 누군가가 분명한 음절을 갖춘 문장으로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의지나 생각으로 그 기도를 멈추어보려고 했지만 멈추어지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이 나와 관련 없이 계속해서 마치 내 귀에 대고 말을 하듯 기도를 했다.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지금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기도를 듣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이날 평생 잊을 수 없는 종교적 체험들은 한 것이다. 귀로만 들어왔던 성서의 한 부분이 내 인생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계시였다. 가 본 적도 없는 예루살렘 땅의 예수를 한국 땅 한 모퉁이 인천에서 살고 있는 내가 보았다는 것도 신비이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예수를 거의 2천 년이 지난 후에도 나 같은 어린 중학생이 보았다는 것도 신비였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었다. 그분은 어떤 제한된 역사 안에만 갇혀 있는 분이 아니고 어느 지역 안에만 갇혀 있는 분이 아닌 초월하신 분이었다. 더군다나 그분은 나의 실존 속에 함께하시는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었다. 나의 삶 속에 개입하셔서 구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신앙하는 이유였다.
이 당시 나에게는 분명한 기독교 신화가 있었다. ‘이 땅에 있는 내가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믿었다. ‘2천 년 전에 죽었던 예수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었다. 이 말은 예수가 마치 내 어머니처럼 때로는 내 곁에서 나에게 따듯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때로는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뒤로 다가와서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그런 믿음이다. 시간과 공간이란 틀을 만들어 놓고 계산하는 오늘날 과학의 시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하나님, 예수를 경험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문제를 과학적인 공식을 대가면서 설명할 재주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믿고 있었던 기독교 신화인 것이다.
과학을 좋아하는 기독교인
본래 나는 과학을 좋아해서 어릴 때 “장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과학자”라고 대답하곤 했다. 물론 지금도 과학잡지를 즐겨보곤 한다. 그렇다고 과학을 맹신하지는 않는다. 처음으로 종교적인 경험을 한 후 나의 관심사는 성서가 되었다. 성서를 읽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나는 목사님들에게 묻곤 했다. 이때 만난 목사님들은 나의 질문에 곤혹을 치르곤 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나 동정녀 탄생 기적 등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믿으면 되니까. 문제는 성서 내용 가운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창조했다. 이후 아담과 하와 사이에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다. 창조 후 지금까지 지구의 총 인구는 4명이 된 셈이다. 그런데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직 아담과 하와 사이에 세 번째 아들 “셋”이 태어나기 전이기에 총 인구는 3명인 셈이다. 하나님이 가인의 죄를 문책한 후 땅을 떠돌아다니는 벌을 내린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벌을 두려워하는 가인의 말을 보면 자신이 세상을 떠돌다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님 또한 가인을 죽이는 놈들은 더 중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창 4:14-15). 도대체 가인에게 위협적인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또한 기독교에 중심이라고 하는 예수의 부활 사건은 신약 4개의 복음서 안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 복음서들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드러난다. 한 가지 분명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르게 기술하고 있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 갔을 때 무덤 입구에서 돌 위에 앉은 한 명의 천사를 만난다(마 28:2). 마가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무덤을 찾아 갔을 때 무덤 안에서 흰 옷을 입은 한 명의 청년을 만난다(막 16:5). 누가복음에는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이 무덤을 찾아 갔을 때 무덤 안에서 빛나는 옷을 입은 두 명의 사람을 만난다(눅 24:4). 요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속을 들여다 볼 때 흰 옷을 입은 두 명의 천사를 만난다(요 20:12). 왜 복음서들 간에 부활 보도들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당시 이런 의문들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런 의문들이 나의 신앙을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내 신앙이 종교적 체험에 근거한 것이지 합리적인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교체험 속에서 만난 하나님이 나를 신학교로 밀어 넣었다.
혼란에 빠진 신학생
나는 성서적 세계관에 기초한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1979년도에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처음 접하는 신학에 대한 나의 태도는 교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었다. 사실 신학을 분석하고 평가할 실력이 없는 신학교 초년생인 나로서는 그것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당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신앙의 집을 부수어버리고 새 집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공회 감독이었던 로빈슨(John A.T. Robinson, 1919-1983)의 책『신에게 솔직히』를 요약 정리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철학적 개념조차 익숙지 않는 내게 매우 버거운 숙제였다.
이 책의 내용은 주로 불투만(R. Bultmann), 틸리히(P. Tillich), 본회퍼(D. Bonhoeffer)의 사상들을 요약하고 거기에 로빈슨이 자신의 견해를 추가해서 만들었다. 책 전반에 거처 로빈슨은 교회 권위에 도전하려고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단지 신앙인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가르침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자극을 주기 위해서 썼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1960년대 중반에 격론을 불러 일으켰다.
로빈슨은 전통적으로 가르쳐왔던 우주 “저 밖에”(out there) 또는 “저 위에”(above) 계신 하나님을 거부한다. 그런 신화와 같은 저 하늘 너머에 있다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신의 명칭도 신화적인 “하나님” 대신에 틸리히가 만들어낸 용어 “존재의 기반”(Ground of being)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 새로운 용어에 의해 하나님은 “저 너머”에 멀리 떨어진 분이 아니라 인간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분이 된다.
로빈슨은 초자연주의와 상반되는 표현으로 “자연주의”(Naturalism)를 언급한다. 로빈슨의 “자연주의”에서 하나님은 사물의 총체 또는 우주 전체가 아니고 자연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어떤 존재이다. 앞으로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관한 전통적인 가르침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성서 안에 초월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하늘”에 대한 가르침도 앞으로 지식이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다. 점차적으로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 소수만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신앙인들에게 이런 전통적인 가르침들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로빈슨에게 예수는 사랑이 완전하게 구현된 “타자를 위한 인간”(the man for others)이다. 본래 이 용어는 본회퍼가 만들어 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로빈슨은 예수의 신성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예수를 본 것이다. 사실 로빈슨은 예수가 완전한 신이며 완전한 인간이란 성육신을 사상을 공격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정 기간 동안 이 땅에 내려와 인간처럼 옷을 입고 땅 위를 걸어 다녔다는 전통적인 성육신 사상은 가현설적(Docetic)이라고 논박한다. 하나님이며 인간인 예수는 하나의 “신화”로서나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기독교의 죽은 신화들을 모두 내다버리고 신에게 완전히 솔직해져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는 앞으로 교리나 예배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들을 최소화하고 예방할 수 있다.
한마디로 로빈슨은 옛 것은 버리고 현시대에 걸맞은 새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적인 기독교인들이 신화적인 옛 기독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가르쳐왔던 신화적인 하나님을 포기하고, 대신에 틸리히가 실존주의 신학에서 제시한 “존재의 기반”(Ground of Being)으로 대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초월적, 초자연적, 종교적인 기독교를 버리고 본회퍼가 제시한 “종교 없는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로 대체시켜야 한다.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만 다루어왔던 하나님의 계시를 지금부터는 문화 전반으로 확대시켜서 세속적인 사람들까지 품을 수 있는 “세속 신학”(Secular theology)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래된 전통적인 것들을 벗어버리고 현대화된 상당히 수준 높은 기독교를 제시하고 있다. 웬만한 철학 개념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열 번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표현들로 신앙의 내용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아니면 번역서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이 당시 관련된 책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본문을 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날다. 이 당시 강의실에서 자주 들었던 표현들은 틸리히(Paul Tillich)의 “존재의 기반”(Ground of Being), 불투만(Rudolf Bultmann)의 “비신화화”(Demythologizing),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비종교화”(religionless Christianity), 하비 콕스(Harvey Cox)의 “세속도시”(The Secular City), 라우쉔부쉬(Rauschenbusch)의 “사회복음”(Social Gospel) 등이었다.
본질에 관한 질문
이런 철학화 되거나 세속화(Secularization) 되어버린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내 안에서는 무어라고 딱히 집어낼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나의 정체성에 관한 갈등일 수도 있고 기독교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일 수도 있었다. ‘나는 무엇을 신앙하는가?’, ‘내가 믿는 기독교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혼란 속에서 나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을 알려면 성서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하기 시작했다.
성서 사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성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위 고등비평이라고 하는 전승사 비평, 편집사 비평, 양식비평 등에 관련된 과목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택해서 들었다. 문제는 이런 성서 비평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서 본문에 대한 신뢰가 점점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가 아니라 연구실 안에 하나의 실험 대상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과학적 비평방법에 의해 성서 본문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쪼개 보기도 하고 잘라내 보기도 했다. 성서 본문의 해체(deconstruction)나 재구성(reconstruction)이란 표현이 성서 비평학을 공부하면서 익숙해졌다. 분명한 것은 이런 공부를 통하여 나의 신학 사상이 상당히 철학화 되고 과학화 되면서 수준이 꽤나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없는 크리스천
생애 처음으로 만난 그 조직신학 교수의 말대로 내 안에 옛 신앙은 무너지고 새로운 신앙의 집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신학 수업을 통하여 내 안에 세워진 신앙의 집은 다음과 같았다. 시대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사는 시대였지만 현시대는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어릴 때는 부모를 의지하며 살다가 성년이 되면 부모의 도움 없이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현 시대에 성숙한 기독교인이란 하나님 도움 없이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주체가 되어서 자기 실존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참인간 예수처럼 자신이 신앙의 주체가 되어서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짐을 짊어지고 성숙한 결단을 내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1970년대 말 한국에는 정치적으로 군부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학생운동이 자주 일어났었다. 한 교수가 강의실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만일 내가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버스 안에 앉아 있는데 버스 운전사가 갑자기 미쳐버렸다고 생각해보자. 이 미친 운전사는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버스를 몰아대고 있다. 이대로 있으면 버스와 함께 안에 탄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에 버스 안에 앉아 있는 당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교수는 정답도 말해주었다. “당장 그 미친 버스 운전사를 밀쳐내고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살 수 있다.” 당시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라는 간접적인 권고였다. 나 역시 이 어두워져 가는 부도덕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인천 창영 교회에서 매주 모였던 반정부 학생모임인 “에큐메니칼”에 참석해서 사회 과학 서적들을 탐독했었다. 이 때 내가 손에 들고 다녔던 책들 중에 하나가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A Theology of Liberation)이었다.
현대 기독교를 떠나는 신학생들
이 당시 나는 사상적으로는 이전보다 깊어졌고 신학적으로도 꽤나 현대적인 신학을 수용하면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였다. 또한 성서 연구에 있어서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본문을 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다. 머리는 학문으로 차고 있는데 반대로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고 술도 마셔보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학교 앞 당구장을 드나들면서 마음을 달래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런 생활은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현대 신학이 이런 생활에 면죄부를 허락한 것이다. 나에게 분명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꼭 집어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단 말인가!
그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나는 때로는 친구들과 다방에 모여 때로는 기숙사에 모여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한 가지 발견한 것은 나만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신학을 하겠다고 이 학교에 들어와 동기가 된 친구들 또한 그것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나름대로 방황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골치 아픈 신학이나 신앙을 아예 포기하고 학생 운동에 뛰어 들어가 사회 구원을 위해 몸을 불살라보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차라리 그것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포기하고 신학교를 뛰쳐나가 불교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선불교나 동양철학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한번은, 신학교 도서관에서 친구가 종이 하나를 나에게 보여주며 좋아 했다. 부동산 중개인 시험에 합격했다는 증서였다. 자기는 졸업하면 부동산 중개업자나 되겠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 하나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디로 갈지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황으로 인해 신학교를 뛰쳐나가 전철 기관사가 된 문재승이란 동기가 있다. 이 친구는 2004년 2월 4일 저녁 7시쯤 구로역 부근에서 사고당한 사람을 도와주려다 열차 사고로 순직했다. 이 친구가 동기 게시판에 사고 전에 남긴 마지막 글 중에 아래와 같은 「나 돌아가고 싶다」가 있다.
「박하사탕」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다.
그 주인공이
나와는 너무나 친숙한 철길 난간에서 외치는
“나, 돌아가고 싶다!” 어디로???
교회의 사회적 무능과 부패,
자유주의 신학의 공허한 관념성,
더욱이 나 자신을 비롯한
Christian의 나약성과
그 비겁함이 싫어서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이제는 유행지난 옷처럼
재활용 쓰레기통에나 던져질
無神의 사회주의에 열광,
흥분했던 시대열병에서
사랑하는 내 것이기에
더욱 초라하고 왜소하게만 느껴졌던 모태신앙,
단순 무식의 뜨거운 순정 신앙으로,
두통 없고 맑은 머리의 투명한 신앙,
성탄 전야 시골교회의 빛나는 별빛,
어린 나를 포근히 감싸던 사랑, 사랑, 사랑
예수님의 아늑함으로.
🏛️ 최고 신학자의 심층 분석 및 현대적 해석
도올의 큐복음서와 도마복음에 대한 반박 (3) (김기천) 해설 및 분석
1. 핵심 요약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개인적인 신앙 여정과 신학적 탐구를 진솔하게 담아낸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성장하여 종교적 체험을 통해 신앙을 확립했지만, 신학대학에서 현대 신학 사조를 접하며 깊은 혼란을 겪는다. 결국 그는 개인의 체험과 성서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통해 자신만의 신앙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2. 신학적 인사이트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 고백을 넘어, 현대 신학의 주요 쟁점들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경험은 현대 신학이 전통적인 신앙과 만나 빚어내는 갈등과 고민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신앙과 이성, 전통과 현대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1) 신화와 신앙:
목사님은 어린 시절 경험한 기독교 신화를 자신의 신앙의 기반이자 삶의 기초로 설명한다. 여기서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이야기 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신화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신화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현대 신학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 역사적 맥락: 20세기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성서의 신화적 표현들을 현대인의 이해 방식에 맞게 '비신화화'(Demythologizing)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음서에 나타난 기적 이야기나 천사, 악마 등의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당시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며, 현대인에게는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신화적 표현들을 제거하고 그 안에 담긴 실존적인 의미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철학적 맥락: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는 신화를 인간 정신의 근본적인 표현 방식 중 하나로 보았다. 그는 신화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 체계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신화를 통해 인간의 심층 심리를 탐구하고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신학적 의미: 목사님의 '신화'는 불트만이 말하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카시러가 말하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자 신앙의 기반이 되는 이야기이다. 즉, 그는 신화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단순히 교리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개인의 경험과 해석을 통해 형성된 살아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 오늘날의 적용: 현대 사회에서 '신화'는 더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대중문화는 우리 시대의 가치관과 욕망을 반영하는 신화를 생산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대인은 다양한 신화 속에서 진실을 분별하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2) 종교 체험:
목사님은 중학교 시절 부흥회에서 강렬한 종교 체험을 한다. 그는 환한 빛을 보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을 보았으며, 방언을 말하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종교 체험은 그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그가 신학대학으로 나아가는 동기가 된다.
- 역사적 맥락: 기독교 역사에서 종교 체험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복음을 전파했으며, 중세 시대의 신비주의자들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깊은 영적 체험을 했다. 종교 개혁 이후에는 개인의 성서 해석과 더불어 종교 체험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 철학적 맥락: 독일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는 종교의 본질을 '절대 의존 감정'(absolute Abhängigkeitsgefühl)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종교가 이성적인 교리나 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무한한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 신학적 의미: 목사님의 종교 체험은 슐라이어마허가 말하는 '절대 의존 감정'을 경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환한 빛을 보고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방언을 말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이성을 초월하는 신적인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 오늘날의 적용: 현대 사회에서 종교 체험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종교 체험은 개인에게 깊은 위안과 평안을 주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 체험은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맹신하거나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종교 체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3) 과학과 신앙:
목사님은 과학을 좋아하지만 과학을 맹신하지 않는다. 그는 성서의 내용 중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종교적 체험에 근거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들이 그의 신앙을 흔들어놓지는 못했다.
- 역사적 맥락: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중세 시대에는 신앙이 과학을 지배했지만, 근대 과학혁명 이후에는 과학이 신앙에 도전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19세기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면서 과학과 신앙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 철학적 맥락: 과학적 세계관은 자연 현상을 인과 관계에 따라 설명하려고 한다. 반면, 신앙은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을 믿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한다.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 신학적 의미: 목사님은 과학적인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종교적 체험에 근거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과학과 신앙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그는 과학적인 탐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이다.
- 오늘날의 적용: 현대 사회에서 과학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과학과 신앙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신앙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4) 현대 신학의 도전:
목사님은 신학대학에서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를 접하면서 큰 혼란을 겪는다. 로빈슨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고 현대적인 신학 사조를 제시한다. 목사님은 이러한 새로운 신학 사조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 역사적 맥락: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는 1960년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현대인의 삶과 사고방식에 맞는 새로운 신학을 모색했다. 로빈슨의 주장은 당시 기독교계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현대 신학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철학적 맥락: 로빈슨은 불트만, 틸리히, 본회퍼 등의 신학 사상을 수용하면서 실존주의적인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했다.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거부하고, 개인의 실존적인 경험과 윤리적인 실천을 강조했다.
- 신학적 의미: 목사님은 로빈슨의 주장을 접하면서 자신의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는 전통적인 신앙과 현대적인 신학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경험은 현대 신학이 전통적인 신앙과 만나 빚어내는 갈등과 고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오늘날의 적용: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 세속주의의 확산, 다원주의의 심화 등은 기독교 신앙의 전통적인 가치와 충돌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5) 본질에 관한 질문:
목사님은 현대 신학을 접하면서 '나는 무엇을 신앙하는가?', '내가 믿는 기독교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을 알기 위해 성서를 연구하고 다양한 신학적 방법론을 탐구한다.
- 역사적 맥락: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종교 개혁 시대에는 성서의 권위와 개인의 신앙이 강조되었고, 근대 시대에는 이성과 과학의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이 재해석되었다. 현대 시대에는 다원주의적인 세계관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고유한 가치를 탐구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 철학적 맥락: 기독교 철학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철학적인 답변을 제시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신의 존재 증명, 인간의 자유 의지 문제, 악의 문제 등은 기독교 철학의 주요 주제이다.
- 신학적 의미: 목사님은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하고 깊이 있는 신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그는 성서 원어를 공부하고 다양한 성서 해석 방법론을 익히면서 자신의 신학적인 시야를 넓혀간다.
- 오늘날의 적용: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신학적인 답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6) 하나님 없는 크리스천:
목사님은 현대 신학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이 자기 인생의 자율적인 주체가 되어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 역사적 맥락: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종교 없는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를 주창하면서 전통적인 종교 형식을 비판하고, 세상 속에서 실천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은 당시 나치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 철학적 맥락: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하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신학적 의미: 목사님의 '하나님 없는 크리스천'은 본회퍼의 '종교 없는 기독교'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수동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능동적인 신앙을 추구한다.
- 오늘날의 적용: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을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환경 문제, 빈곤 문제, 인권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회적인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7) 현대 기독교를 떠나는 신학생들:
목사님은 현대 신학을 접하면서 마음이 공허해지고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신학생들이 신앙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역사적 맥락: 현대 신학은 전통적인 신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면서 많은 신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했다. 어떤 신학생들은 현대 신학을 수용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신앙으로 회귀하기도 하고, 어떤 신학생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 철학적 맥락: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면서 전통적인 가치 체계가 붕괴되었음을 알렸다. 그의 주장은 현대 사회의 허무주의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 신학적 의미: 목사님의 경험은 현대 신학이 신앙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 신학은 이성적인 분석과 비판적인 사고를 강조하지만, 때로는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를 간과하기도 한다.
- 오늘날의 적용: 현대 신학은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전통적인 신앙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개인의 신앙 여정을 통해 현대 신학의 주요 쟁점들을 드러내고, 신앙과 이성, 전통과 현대 사이의 긴장 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의 경험은 현대인에게 신앙의 의미를 되묻고, 자신만의 신앙의 길을 찾아가는 용기를 준다.